루이사 피카레타

하느님의 종은 누구입니까?

기도하는 모습으로 두 손을 모으고, 십자고상과 작은 신심 이미지들 앞에 옆모습으로 앉아 있는 하느님의 종 루이사 피카레타의 흑백 사진.

하느님의 종 루이사 피카레타는 1865년 4월 23일, 오늘날 하느님 자비 주일이라 불리는 날에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도시 코라토에서 태어났습니다. 모두 다섯 딸을 둔 그의 부모는 가톨릭 신자이자 농사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악마의 공격으로 자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아홉 번째 생일에 첫영성체를 하고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그 직후부터 그는 내면에서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영적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열여덟 살 무렵 그는 집 발코니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과 그분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증오에 찬 군중의 환시를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외치셨습니다. “영혼아, 나를 도와다오!” 이 체험 후에 그는 희생 영혼으로서 자신을 주님께 봉헌했고, 그의 고통은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 하나는 죽은 듯이 몸이 굳어지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는데, 어떤 의사도 그를 풀어 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가톨릭 사제가 그 위에 십자 성호를 그으면 굳은 상태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한동안 사제들이 관심을 끌려고 연기를 한다고 믿어 그를 여러 날 굳은 상태로 내버려 두는 등 심한 박해를 받았지만, 그의 상태는 마침내 대주교 Giuseppe B. Dottula의 주의를 끌게 되었고, 대주교는 1884년에 Michele De Benedictus 신부를 그의 특별 고해 사제로 지정했습니다. 신부는 날마다 그를 찾아왔고, 루이사는 그에게 자기 영혼의 깊은 곳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는 신부에게 순명으로 복종했고, 신부는 그가 희생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고통에 제한을 두었습니다. 이 시기에 루이사는 계속 침대에 머물러 있는 것과, 하루에 한 번의 작은 식사를 제외하고는 음식을 끊는 것을 허락받았는데, 그 식사마저 언제나 도로 토해 냈습니다. 그는 남은 생애 약 육십 년 동안 오직 거룩한 성체와 하느님의 뜻으로만 살아가며 침대 위의 희생자로 머물렀습니다.

1898년에 루이사에게 Gennaro Di Gennaro 신부라는 새 고해 사제가 지정되었고, 그는 루이사에게 자신과 예수님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글로 적으라고 순명을 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자주 불평할 만큼 고된 희생이었지만, 그는 이 순명이 풀린 1938년까지 지정된 여러 고해 사제들에게 순명하여 계속 글을 썼습니다. 이 기간에 그가 쓴 모든 글이 서른여섯 권의 『하늘의 책』(그리고 몇몇 관련 저작)을 이루며, 모두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앎과 실천에 관한 것입니다.

1947년 3월 4일, 짧은 폐렴(그의 생애에서 진단된 유일한 병)을 앓은 뒤, 하느님의 종 루이사 피카레타는 땅에서 배운 대로, 하늘의 방식으로 하느님의 뜻을 하늘에서 계속 행하기 위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저술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우리도 하늘에서처럼 땅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행복을 배우고, 하느님 뜻의 나라가 이 땅에서 다스리게 함으로써 그 행복을 땅의 모든 이에게 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교황청으로부터 이의 없음(Non Obstare)의 서한을 받은 뒤인 1994년 11월 20일, 곧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루이사가 살았던 교구인 트라니 대교구의 대주교 카르멜로 카사티 지극히 존경하올 대주교님께서는 하느님의 종 루이사 피카레타의 시복 추진 절차를 위한 교구 재판소를 설치하셨습니다. 이 재판소는 오늘도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활동을 이어 가고 있으며, 루이사가 머지않아 교회의 제대에 오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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